2007년, 코스타리카 남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실신 사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미스터리해졌다.
30명이 넘는 여학생이 같은 날, 같은 학교에서 연쇄적으로 쓰러졌고, 병원에서는 바이러스도, 중독도, 신경학적 질환도 아니라는 진단을 내렸다.
의학적으로는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반복되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정상이란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왜 쓰러졌는가?”
이 시점에서 비로소 주목받게 된 개념이 있다. 바로 ‘집단 히스테리’ 혹은 ‘심리적 전염 현상’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불안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퍼지고, 실제로 신체적 반응까지 일으킬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집단 히스테리란 무엇인가?
‘집단 히스테리’라는 용어는 다소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오랫동안 이 개념을 통해 명확한 병리적 원인이 없는 집단적 신체 증상을 설명해왔다.
보다 정확하게는 Mass Psychogenic Illness (MPI) 혹은 Mass Sociogenic Illness (MSI) 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이는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여러 명에게서 동시에 나타나는 유사한 신체적 증상’을 뜻한다.
이 현상은 단순한 상상이나 거짓이 아니다.
경련, 어지럼증, 실신, 두통, 구토 등은 모두 실제로 나타나며, 증상을 겪는 사람에게는 실제 질병과 다르지 않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정밀한 검사를 해도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원인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가?
심리적 전염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학계에서는 집단 히스테리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공통 요소를 제시한다:
- 심리적 스트레스가 누적된 환경
(예: 시험 기간, 규율이 엄격한 학교,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 감정 조절 능력이 미성숙한 연령대
(특히 청소년기, 주로 10대 초중반) - 폐쇄된 집단 내에서의 고립감
(기숙사, 교실, 수용소, 공장 등) - 권위적인 분위기와 표현의 억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문화) - 처음 쓰러진 사람의 행동을 주변이 직접 목격
(시각적・감정적 자극이 동시에 전달됨)
이러한 조건이 맞물리면, 불안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확산된다.
‘감염’이 아닌 ‘공명’으로 퍼진다
집단 히스테리는 바이러스처럼 전염되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으로 감지된다.
한 명이 과호흡을 시작하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 역시 무의식적으로 불안과 긴장을 체내에 저장하기 시작한다.
이때 뇌와 신경계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려고 아드레날린 분비를 늘리고,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며, 호흡을 가쁘게 만든다.
이런 반응이 제어되지 않고 계속되면, 결국 실신, 떨림, 경련 등의 신체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사회적 동조 압력이 강할수록 더 빠르게 확산된다.
누군가가 쓰러지고, 다른 사람도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면
“나도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건 정상”이라는 심리적 확신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확신은 곧 실제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코스타리카 사건에 그대로 적용되는 구조
코스타리카 집단 실신 사건은 이러한 이론이 놀라울 정도로 그대로 적용되는 사건이다.
- 10대 여학생만이 영향을 받았다
- 사건이 시작된 교실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 시험 기간 직전으로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기였다
- 1명의 실신 이후, 연쇄적으로 증상이 확산되었다
현지 보건 당국과 학교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학생들은 처음 쓰러진 아이를 본 뒤 급격히 불안해졌고,
몇 분 안에 “나도 숨이 안 쉬어진다”, “눈앞이 하얘진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의학적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들의 몸은 분명히 위기 상황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 히스테리의 전형적인 전개 양상이다.
유사한 사건들은 전 세계에서 반복된다
코스타리카 사례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전 세계 유사 사건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탄자니아 웃음병 (1962)
수십 명의 여학생이 이유 없이 웃기 시작해, 이 현상이 주변 마을로까지 확산.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고, 결국 심리적 전염 현상으로 결론.
미국 레로이 고등학교 틱 증상 (2011)
여학생 다수가 갑자기 틱 장애 증상(근육 떨림, 발성 장애 등)을 보임.
의학적으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음. 전문가들은 SNS와 집단 심리 요인을 지목.
이러한 사건들은 모두 특정 집단, 심리적 스트레스, 신체적 이상 없음, 빠른 회복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리고 이는 코스타리카 실신 사건과 완벽히 일치한다.
결론: 병이 아닌 ‘반응’, 치료가 아닌 ‘이해’
집단 히스테리는 질병이라기보다,
심리적 긴장과 억압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감정적 반응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코스타리카 실신 사건을 바라볼 때,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히
“왜 쓰러졌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불안했는가?”, “왜 말하지 못하고 몸이 먼저 반응했는가?”일지도 모른다.
심리적 전염은 무서운 전염병이 아니라,
공감과 불안의 감정이 조용히 퍼져나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이러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다면,
같은 사건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음 편 예고
[코스타리카 집단 실신 사건 #4] 그날 교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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