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터리 사건

[다이아틀로프 패스 사건 #3] 시신의 발견과 부검 결과, 미스터리의 시작

by dcentlab Master 2025. 12. 4.

1959년 러시아 우랄 산맥에서 발생한 다이아틀로프 패스 사건은 단순한 등반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9명의 경험 많은 탐험대원들이 산속에서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 시신에서 드러난 이상 징후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론과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 구조대가 시신을 발견한 경위부검 결과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들을 중심으로 다룹니다. 대원들의 마지막 흔적과 상태는 이 사건이 얼마나 불가해한 미스터리인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구조대의 투입과 수색 개시

탐험대는 2월 12일 경 귀환 예정이었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자, 가족들과 동료들은 이상함을 감지하고 학교 측에 보고합니다. 공식 수색은 2월 20일경 시작되며, 초기에는 자원봉사 학생들과 교직원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후 군인, 경찰, 구조 전문가까지 동원되면서 본격적인 대규모 수색이 이루어집니다. 당시에는 눈이 깊이 쌓여 있었고, 기상도 좋지 않아 수색이 어려웠지만, 2월 말부터 중요한 흔적들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텐트의 발견: 의문의 시작

2월 26일, 구조대는 눈에 거의 파묻힌 상태의 텐트를 발견합니다. 텐트 내부에는 신발, 방한복, 음식, 카메라, 일지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특히 텐트 천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찢긴 흔적이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탐험대가 스스로 텐트를 찢고 급히 탈출했다는 것을 뜻하며, 당시 상황이 심각한 공포나 위급상황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시신 발견 순서와 위치

첫 번째 발견: 나무 아래 두 시신

텐트에서 약 300m 떨어진 숲 가장자리, 커다란 삼나무 아래에서 유리 크리보니셴코유리 도로셴코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둘 다 맨발에 속옷 차림이었으며, 손에는 나뭇가지를 움켜쥔 흔적과 화상 자국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불을 피우려 했던 것으로 보이며, 주변에는 나무껍질이 벗겨진 흔적도 남아 있었습니다. 체온을 유지하려 한 시도였지만, 결국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 번째 발견: 텐트와 숲 사이 3구 시신

그 다음으로는 텐트와 나무 사이 중간 지점에서 이고르 다이아틀로프, 지노이다 콜모고로바, 루스탐 슬로보딘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이들은 텐트로 돌아가려 했던 것으로 보이며, 한 줄로 정렬된 듯한 발자국이 그 경로를 뒷받침합니다. 세 사람 모두 얼어 죽은 것으로 보이지만, 루스탐의 경우 두부 손상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손상은 외부 충격으로 인한 것이지만, 피부에 큰 외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상한 점으로 기록됩니다.

나머지 4명: 깊은 눈 속, 중대한 손상

가장 늦게 발견된 시신 4구는 실종 후 약 2개월이 지난 5월 4일, 눈이 녹은 후에야 발견됩니다. 이들은 숲을 더 깊이 파고든 곳에 만들어진 임시 눈구덩이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가장 심각한 손상이 있었습니다.

  • 루드밀라 두비니나: 갈비뼈 다수 골절, 혀와 눈, 입술이 없음
  • 알렉산더 졸로타료프: 갈비뼈 5개 골절, 내부 장기 파열
  • 니콜라이 티보-브리뇰: 두개골 골절, 외부 출혈 없음
  • 세묘노 졸로타료프: 카메라 장착, 심한 내부 부상

이들의 시신은 외부 출혈 없이 강한 압력에 의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자동차 충돌 수준의 압력이 가해졌다는 부검 소견이 나왔습니다.


부검 결과가 말해주는 미스터리

시신을 부검한 당시의 공식 보고서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 외상과 손상이 설명되지 않는 수준으로 과도함
  • 방사능 물질이 일부 옷에서 검출됨
  • 사망 원인으로는 저체온증치명적 충격이 혼합됨
  • 일부 시신은 안구, 혀, 입술 등이 훼손된 상태

특히 루드밀라 두비니나의 경우, 혀가 완전히 절단된 상태로 발견되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동물에 의한 손상설, 고통을 통한 경련성 손상설, 혹은 인위적 절단설 등 다양한 이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탐험대가 조난을 당했다는 일반적인 가설로는 설명되지 않는 요소가 많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은 단순한 자연재해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 시신이 떨어진 위치와 정렬 상태가 매우 조직적
  • 외부 손상 없이 강한 압력에 의한 사망
  • 일부 대원의 옷에 비정상적인 방사능 수치
  • 구조대원 중 일부가 수색 중 이상한 금속 냄새를 맡았다고 진술

당시 소비에트 연방 정부는 사건을 눈사태 또는 저체온증에 의한 사고로 마무리했지만, 관련 문서가 기밀로 봉인되고 현장 접근이 제한되면서 의혹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건에 대한 초기 결론과 반응

1959년 5월, 소련 당국은 공식적으로 사건을 “불가항력적 자연 요인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를 종료합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유일한 대원인 유리 유딘과 희생자 가족들은 이 결론을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일부는 군사 실험 중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다는 가설을 제기했고, 또 다른 일부는 초자연적 현상 또는 지역 민족과의 충돌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론도 모든 정황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정리

다이아틀로프 패스 사건의 핵심은 시신 발견 이후부터 본격화됩니다.
정상적인 조난사건이라면 설명되지 않을 중증 손상, 방사능 흔적, 조직적인 이동 경로, 신체 훼손 등의 요소는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사건을 둘러싼 가장 유력한 가설들에 대해 다뤄봅니다. 눈사태설, 기상 현상설, 군사 실험설, 인프라사운드 이론 등 수십 년간 논의되어 온 가설들을 비교 분석하고, 각 이론이 실제 정황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하나하나 검토해보겠습니다.

다음 편: [4편] 눈사태인가? 실험인가? 다이아틀로프 사건을 둘러싼 7가지 가설 분석